제로 트러스트란 무엇인가? 버즈워드인가? 새로운 보안 기술군인가? 제로 트러스트를 속 시원히 이해하기
들어가며
“제로 트러스트”라는 말이 유행한 지 오래다. SASE다 ZTNA다 IAM 강화다 하며, 마치 새로운 시대의 마법처럼 이야기된다. 그러나 현장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결국 인증을 강화하자는 얘기 아닌가?”라는 차가운 시선도 많다.
과연 제로 트러스트는 새로운 보안 패러다임인가, 아니면 단순한 버즈워드인가. 이 글에서는 그 실체를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경계형 보안이라는 전제
먼저 기존 보안 모델을 돌아보자. IPv4 시대의 LAN은 프라이빗 주소 공간과 NAT에 의해 보호되어 외부에서 직접 접근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방화벽이 “외부에서 내부로”의 통신을 막아 주어, 경계를 지키기만 하면 내부는 안전하다는 전제가 오랫동안 작동했다.
이 모델은 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실제로 인터넷 사용의 안전을 지탱했다. “VPN으로 사내에 들어가면 프리패스”──이것이 경계형 보안의 전형이었다.
제로 트러스트가 주목받는 배경
그러나 상황이 변했다.
클라우드와 모바일의 확산
직원이 자택이나 카페에서 SaaS를 이용하기 시작하며 경계가 모호해졌다.
내부자 위협·악성코드의 횡전개
한 번 침입이 허용되면 LAN 내부는 “신뢰의 섬”으로 무방비였다.
Google BeyondCorp의 영향
구글이 제시한 BeyondCorp 모델이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보안”으로 주목받았다.
이렇게 등장한 깃발이 “제로 트러스트”다. “아무도 믿지 마라”라는 슬로건은 경영층에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제로 트러스트를 둘러싼 오해
사실 NIST나 CISA 같은 기관은 “경계를 완전히 버려라”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이행은 단계적이며, 많은 조직은 경계형과 제로 트러스트의 하이브리드가 될 것”이라는 현실적인 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만능론” 같은 인식이 퍼졌을까?
- 벤더가 자사 제품군을 “제로 트러스트 구현 필수 요소”로 팔고 싶었기 때문이다.
- 구글 사례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만능 모델”로 오독되었다.
- 사고 후에 “제로 트러스트였으면 막을 수 있었다”는 사후 설명용 버즈워드로 쓰였기 때문이다.
즉 제로 트러스트는 사상으로는 일리 있지만, 유행어로는 과장되어 왔다.
“경계 불요론”의 함정: 리치 클라이언트가 남아 있는 이상 경계는 필요
여기서 중요한 논점이 있다. 모두가 씽크 클라이언트를 쓰고, 단말에 데이터를 남기지 않는다면 제로 트러스트 설계와 궁합이 좋다. 그러나 현실의 기업은 여전히 리치 클라이언트(풀 기능 PC)를 업무에 사용한다.
리치 클라이언트는 로컬에 애플리케이션과 데이터를 보유하기 때문에 단말이 감염되면 정상 인증을 통과해 내부로 확산된다. 그 확산을 막는 것은 결국 방화벽이나 세그먼트 분할 같은 경계적 제어다.
즉 “제로 트러스트 = 경계가 불필요”라는 이해는 잘못이며, 경계의 두께를 어떻게 최적화할 것인가가 핵심 설계 과제다.
결국 제로 트러스트란 무엇인가?
정리해 보면 제로 트러스트의 실체는 아주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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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된 이미지
- “마법 같은 신기술”
- “경계를 완전히 없애는 혁명”
- “만능 해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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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내용
- “LAN 내부라서 자동으로 안전하다”는 안일한 전제를 버리는 것
- 인증·인가·단말 검증·로그 모니터링 등 기존 기술을 조합해 “경계 안은 안전하다”는 신뢰 전제를 제거한 보안 운영 설계를 구현하는 것
요소 기술 자체는 새롭지 않다.
- MFA(다중 요소 인증)
- SAML·OAuth 기반 인증 연동
- MDM(모바일 디바이스 관리)
- EDR(엔드포인트 탐지·대응)
- CASB(클라우드 접근 제어)
- SASE(클라우드형 네트워크+보안 통합 플랫폼)
이들은 전부 예전부터 있던 기술이다. 제로 트러스트는 그것들을 모아 하나의 깃발로 제시했을 뿐이다.
결론: 제로 트러스트의 진짜 가치
제로 트러스트는 버즈워드인가? 기술인가? 답은 “사상을 포장한 버즈워드이지만, 전제를 다시 묻는다는 점에서 가치는 있다”이다.
“제로 트러스트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경계형 보안(예: LAN) 안이라 자동으로 안전하다는 전제를 버리고, 요소 기술을 엮어 ‘신뢰 전제를 제거한’ 보안 운영 설계를 구현하는 것. 그렇지 않고서는 현실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법 같은 신기술도, 새 제품군도 아니다. 하지만 부풀려진 이야기 껍질을 벗긴 뒤 남는 “설계 사상”으로서의 가치는 분명 존재할지 모른다.
FAQ(자주 묻는 질문)
Q: 제로 트러스트와 VPN의 차이는? A: VPN은 “경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열쇠”이며, 한 번 들어가면 내부는 신뢰된다. 제로 트러스트는 내부에 들어와도 지속적으로 인증·감시가 이루어진다는 점이 다르다.
Q: 제로 트러스트는 기존 방화벽을 불필요하게 만드는가? A: 아니다. (특히 리치 클라이언트의) 단말 감염이나 횡전개를 막기 위해 경계적 제어는 여전히 중요하다.
Q: 중소기업도 제로 트러스트를 도입할 수 있는가? A: 단계적으로 가능하다. MFA 도입이나 로그 모니터링 강화 등 부분적 접근부터 시작할 수 있다.
Q: 제로 트러스트는 새로운 기술인가? A: 기술 자체는 새롭지 않다. 기존 기술을 조합해 사상으로 재정의한 것이다.